제1회 : 멈춰버린 5년, 움직이는 시선

주말 오후 두 시의 카페는 정체된 공기처럼 무겁고 산만했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웅성거리는 소음이 되어 천장 위를 맴돌았고, 에스프레소 머신이 거칠게 스팀을 뿜어내는 소리가 간간이 그 소음의 벽을 뚫고 나왔다. 통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봄볕은 유난히 따스해서, 도심의 빌딩 숲조차 나른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철규는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무의미하게 위아래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화면 상단에는 약혼녀인 수진이 보낸 메시지가 떠 있었다.

‘자기야, 차가 너무 막히네. 15분 정도 늦을 것 같아! 먼저 시켜놓고 있어~!’

철규는 짧은 답장을 보내고 손에 쥔 플라스틱 진동벨을 만지작거렸다. 매끄럽고 차가운 표면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내릴 때마다 묘한 초조함이 번졌다. 수진과는 다음 달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양가 상견례를 마치고, 신혼집 인테리어를 고르고, 청첩장 문구를 수정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막힘없이 흘러갔다. 수진은 다정하고 현명한 여자였고, 철규 역시 그 부드러운 일상에 안주하며 스스로가 꽤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믿었다. 그의 삶은 잔물결조차 일지 않는 잔잔한 호수 같았다. 바로 그 순간까지는 그랬다.

진동벨을 쥔 손가락 끝에 알 수 없는 시선이 감지된 것은 순식간이었다. 철규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대각선 방향의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초록색 대형 이파리가 늘어진 화분 뒤편, 카페에서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자리였다. 그 자리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갈색 머리카락, 살짝 내려앉은 속눈썹, 그리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길 때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무는 버릇까지. 5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생생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의 단칸방 침대 머리맡에서 가장 먼저 마주했던 바로 그 옆모습이었다. 미현이었다.

철규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충격이 일었다. 들이마시던 숨이 목구멍에 턱 걸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온몸의 혈액이 한순간에 머리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3년을 함께 살았고, 5년을 잊고 지냈다고 생각했던 사람. 지독하게 사랑했고, 잔인하리치만큼 사소한 말다툼 끝에 서로를 할퀴며 헤어졌던 나의 옛 연인. 그때, 미현이 묘한 시선을 느낀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공중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철규는 미현의 눈동자가 커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미현의 손에 들려 있던 하얀 머그잔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미현 역시 예상치 못한 거대한 해일 앞에 마주 선 사람처럼 굳어 버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그 찰나의 순간, 거짓말처럼 카페의 소음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음악 소리도, 옆 테이블의 웃음소리도, 커피 머신의 마찰음도 전부 진공 상태 속으로 사라졌다. 웅성거리던 공간은 거대한 침묵의 감옥으로 변했고, 그 안에는 오직 철규와 미현, 두 사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시간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5년이라는 긴 공백은 단 일 초 만에 증발해 버렸다. 시선이 얽힌 그 통로를 타고, 두 사람의 의식은 5년 전 그들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왔던 신림동의 낡은 원룸으로 순간 이동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햇살이 서글프게 좋았었다. 싱크대에 쌓여 있던 설거지거리, 바닥에 뒹굴던 짐 가방, 그리고 별것도 아닌 자존심 때문에 내뱉었던 날카로운 말들.

“이럴 거면 차라리 끝내. 나도 이제 지쳐.”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서로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내고 각자의 짐을 싸서 등을 돌렸던 그 마지막 날의 공기, 서로의 살 냄새, 방 안 가득 차 있던 서늘한 냉기가 지금 이 세련된 카페 안으로 그대로 밀려들어 왔다. 미현은 현재 동거 중인 남자친구인 성민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성민은 미현에게 안정감을 주는 남자였다. 철규처럼 불같이 뜨겁지는 않았지만, 얼음처럼 차갑게 식지도 않는 적당한 온도의 남자. 두 사람은 이미 1년째 집을 공유하며 사실상의 부부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성민은 미현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이따 카페에서 봐, 맛있는 거 사 갈게"라고 다정하게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미현의 머릿속은 하얗게 탈색되어 버렸다.

눈앞에 앉아 있는 철규는 5년 전보다 어깨가 조금 더 넓어졌고, 셔츠 깃은 단정했다. 늘 헝클어져 있던 머리는 깔끔하게 넘겨져 있었다. 소년 같았던 그가 완연한 어른의 실루엣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깊고 짙은 눈동자만큼은 그대로였다. 한때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었다가, 순식간에 가장 비참한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던 그 눈빛. 철규는 여전히 미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내면에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난 5년간 공들여 쌓아 올린 이성적인 삶, 약혼녀와의 평온한 미래,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이라는 단단한 성벽이 미현의 시선 하나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왜 하필 오늘이지?’

철규의 손가락끝이 파르르 떨렸다. 진동벨의 붉은 불빛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약혼녀가 오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단 몇 분. 이 우연이라는 정거장에서, 철규는 평생을 후회할지도 모르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직감했다. 미현은 떨리는 숨을 내쉬며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5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이 덜컥거렸다. 사소한 오해와 말다툼으로 끝내 전하지 못했던 진심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해 밤새 눈물로 지새웠던 그 수많은 밤의 기억이 봇물 터지듯 밀려왔다. 두 사람의 거리는 불과 대여섯 걸음. 그러나 그 사이에는 5년이라는 세월과, 각자의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라는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정적을 깨고 철규가 먼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단호했다. 미현의 동공이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철규의 발걸음이 한 걸음, 한 걸음 미현의 테이블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멈춰 있던 두 사람의 시계태엽이 거칠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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