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훈이 출근한 뒤의 원룸은 정적만이 가득한 진공 상태와 같았다. 혜진은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힌 죄수처럼 시간을 보냈다. 동훈의 용서는 자비가 아니라 고문이었다. 그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민준을 안아주었지만, 혜진에게는 단 한 번도 따뜻한 눈길을 주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오직 아이의 안부에 한정되었고, 밤마다 좁은 바닥에서 느껴지는 동훈의 차가운 등은 혜진에게 "너는 죄인이다"라고 말하는 침묵의 형벌이었다. 그 질식할 것 같은 일상에 균열을 낸 것은 민준의 미술 학원 원장, '진우'였다. 서른 중반의 진우는 미혼이었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다정한 남자였다. 그는 민준의 알레르기 증상 때문에 자주 학원을 비우는 혜진의 사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처음엔 학부모에 대한 친절이었으나, 혜진의 눈 속에 고인 깊은 슬픔을 발견한 순간 그것은 연민을 넘어선 호기심으로 변했다.
"민준 어머니, 오늘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잠시 차 한잔하실래요?"
상담실의 따뜻한 조명 아래서 진우가 건넨 차 한 잔은, 얼어붙어 있던 혜진의 마음을 녹이는 불씨가 되었다. 진우는 동훈과는 달랐다. 동훈이 단단한 바위처럼 혜진을 억눌렀다면, 진우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혜진은 홀린 듯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이혼과 친자 불일치, 그리고 법적 남남인 상태로 이어가는 기괴한 동거까지. 진우는 경악하는 대신 혜진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사랑받지 못하는 곳은 집이 아니라 감옥입니다, 혜진 씨."
그날 이후, 진우의 구애는 거침없었다. 동훈이 일터에서 숫자에 파묻혀 있을 때, 진우는 혜진과 민준을 데리고 햇살 좋은 교외로 나들이를 갔다. 민준은 진우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랐고, 진우는 마치 친부라도 된 양 아이와 몸을 섞어 놀아주었다. 혜진은 그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동훈의 원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안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균열이 파국으로 치달은 것은 비가 쏟아지던 어느 오후였다. 민준을 유치원 캠프에 보낸 날, 혜진은 학원 교실 정리를 돕던 중 진우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혜진 씨, 이제 그만 자신을 벌하세요."
진우의 낮은 목소리가 혜진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의 손이 혜진의 허리를 감싸 안았을 때, 혜진은 본능적으로 거부하려 했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반 년 넘게 동훈에게 거부당하며 억눌려왔던 여성으로서의 갈증이 폭발했다. 진우는 혜진을 원장실 안쪽의 소파로 이끌었다. 빗소리가 창문을 거칠게 때리는 소리 너머로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엉켰다. 진우의 손길은 뜨겁고 노골적이었다. 그는 혜진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며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탐욕스럽게 파고들었다.
"그 집으로 돌아가지 마요. 차가운 바닥에서 그 남자의 눈치나 보는 삶은 이제 끝내요."
진우의 혀가 혜진의 귓바퀴를 핥아 올리자 혜진은 비명을 삼키며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동훈과의 잠자리가 의무와 죄책감의 연장이었다면, 진우와의 몸짓은 오직 쾌락과 해방만을 향해 달렸다. 진우는 혜진의 스커트를 거칠게 밀어 올리고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집요하게 애무했다. 혜진의 몸은 팽팽하게 당겨진 현악기처럼 떨렸다. 진우의 단단한 몸이 그녀를 압박해올 때, 혜진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좁은 원룸에서 동훈의 눈치를 보며 죽여왔던 본능이 뜨거운 액체가 되어 흘러내렸다. 진우는 혜진의 다리를 자신의 허리에 감게 하고는 단숨에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아...!"
혜진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신음했다. 꽉 막혔던 숨통이 터지는 듯한 전율이었다. 진우는 짐승처럼 거칠게 몰아붙였다. 소파 가죽이 비벼지는 소리와 살과 살이 부딪히는 자극적인 파열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혜진은 이 행위가 배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오히려 배신이기에 더 짜릿한 쾌락에 몸을 던졌다. 동훈이 집을 '성전'이라 불렀다면, 진우는 이 공간을 '해방구'로 만들었다. 혜진은 진우의 등줄기를 손톱으로 긁어내리며 더 깊은 곳을 원했다.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혜진의 머릿속에는 좁고 어두운 동훈의 원룸이 한 줌의 재가 되어 날아가는 환상이 보였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혜진은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 여자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죄책감이 없었다. 대신 새로운 욕망과 희망이 번득였다.
"혜진 씨, 민준이랑 같이 내 집으로 와요. 내가 두 사람 다 책임질게."
진우의 제안은 달콤한 독이었다. 혜진은 동훈을 떠올렸다. 여전히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채 증오의 연극을 이어가는 남자. 그리고 자신을 온전한 여자로 봐주는 새로운 남자. 혜진은 이미 마음의 추를 한쪽으로 기울인 상태였다. 그날 저녁, 원룸으로 돌아온 혜진은 동훈을 마주했다. 동훈은 평소처럼 무심하게 넥타이를 풀고 있었다. 혜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속삭였다.
'우리의 계약 조건, 기억하지? 누구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떠나기로 한 거.'
이미 혜진의 몸에는 진우의 체취가 배어 있었고, 마음에는 새로운 집의 도면이 그려져 있었다. 세 사람이 함께 쌓아 올린 위태로운 유리 성에, 드디어 거대한 해머가 내려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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