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후 6개월은 동훈에게 있어 생살을 도려내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법은 그에게 '남남'이라는 서류를 쥐여주며 해방을 선언했지만, 기억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퇴근길, 편의점에서 무심코 민준이 좋아하던 딸기 우유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는 순간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피가 섞이지 않았으니 내 자식이 아니다.' 이 명제는 머릿속에선 참이었으나, 가슴속에선 거짓이었다. 5년 동안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열이 나면 밤을 새우고, 아이의 첫 걸음마에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호했던 그 모든 '아빠의 시간'은 DNA 따위로 지워질 수 있는 휘발성 물질이 아니었다. 동훈은 깨달았다. 자신이 정말 증오했던 것은 혜진의 배신이지, 아이의 존재가 아니었음을. 아니, 오히려 그 아이를 증오하려 애쓰는 자기 자신을 더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동훈은 반 년 만에 혜진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그녀는 경기도 외곽의 낡은 빌라촌에서 아이와 단둘이 지내고 있었다. 빌라 입구에서 마주친 혜진은 반 년 만에 십 년은 늙어 보였다. 화사했던 피부는 거칠어졌고, 늘 단정했던 머리는 대충 묶여 있었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민준이 동훈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아빠...?"
아이가 조심스럽게 내뱉은 그 한마디에 동훈의 견고했던 결심은 유리창처럼 박살 났다. 동훈은 무릎을 굽혀 아이를 품에 꽉 안았다. 아이에게선 여전히 그리웠던 젖살 냄새와 약한 파우더 향이 났다. 혜진은 당황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동훈을 바라보았다.
"동훈 씨, 여기까지 어쩐 일로..." "가자, 혜진아." "...어디를요?" "우리 집으로. 아니, 내가 있는 곳으로."
동훈의 말에 혜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용서하겠다는 거야? 어떻게 그게 가능해? 동훈 씨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재판까지 하고, 우리를 그렇게 내쫓았는데." 
"용서가 아냐. 그냥... 못 견디겠어. 너희가 없는 세상이 너무 추워서, 내가 살려고 부르는 거야. 민준이, 내 아들 아니어도 상관없어. 내 눈에 아들로 보이면 그게 내 아들이지."
그것은 애매한 항복 선언이었다. 논리와 도덕을 버리고 오직 결핍에 의존한 선택. 혜진은 한참을 울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도 아이를 홀로 키우는 현실은 지옥 같았을 것이고, 자신을 '아빠'라 부르는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은 아이의 본능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동훈의 8평짜리 원룸이었다. 예전의 34평 아파트에 비하면 현관부터 숨이 턱 막히는 크기였다. 혜진이 짐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 동훈이 혼자 지내던 단출한 가재도구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좁지? 곧 큰 데로 옮기자. 일단 여기서... 셋이 다시 시작해 보는 거야."
동훈의 말에는 희망과 불안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혜진은 좁은 방 한구석에 짐을 내려놓았다. 민준은 낯선 환경이 무서운지 동훈의 바짓가랑이를 꼭 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세 사람은 원룸 바닥에 이불을 나란히 펴고 누웠다. 한 사람은 왼쪽 끝에, 한 사람은 오른쪽 끝에, 그리고 그 가운데에 민준이 누웠다. 천장에 달린 낡은 형광등 아래에서 세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엉켰다. 법적으로는 이혼한 남남. 생물학적으로는 아무런 상관없는 타인들. 그러나 이 좁은 방 안에서 그들은 다시 '가족'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동훈 씨." 
어둠 속에서 혜진이 나직하게 불렀다. 
"응."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근데 우리... 정말 괜찮을까?" "조건이 있어."
동훈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우리 중 누구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는 미련 없이 떠나기로 해. 그때까지만... 이 연극을 계속하자."
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조건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한다는 방증이자,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유리 성을 다시 쌓겠다는 서글픈 약속이었다. 동훈은 옆에 누운 민준의 작은 손을 잡았다. 아이의 손은 따뜻했다. 이 온기가 가짜라고 해도, 이 아이가 누군가의 씨앗이라 해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손을 잡고 잠든 존재는 민준뿐이었다. 재회는 애틋했지만, 방 안의 공기는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좁은 원룸은 셋이 살기에 너무 작았고, 그들이 지닌 상처를 덮기에는 너무 비좁았다. 동훈은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벽 너머 이웃의 소음이 들려올 때마다, 그는 자신이 쌓아 올린 이 위태로운 행복이 언제 다시 무너질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그것은 용서라는 이름의 또 다른 형벌이었고, 재회라는 이름의 유예된 이별이었다. 남남끼리의 동거. 세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결핍을 동력 삼아, 목적지 없는 항해를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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