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싱거울 정도로 빠르게 끝났다. 유전자 검사 결과라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 앞에 법은 단호했다. 판결문에는 ‘친생자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혼이 성립되었음을 알리는 주문이 적혀 있었다. 동훈은 법적으로 완벽한 ‘승리자’였다. 위자료 청구권도 손에 쥐었고, 혜진에게 재산 분할을 해줄 의무도 사라졌다. 법원을 나서는 길, 동훈의 변호사는 어깨를 두드리며 고생했다고 축하를 건넸다. 하지만 동훈의 입안은 쓴 쑥을 씹은 듯 써 내려갔다. 승소의 대가는 지독했다. 동훈은 가장 먼저 혜진과 함께 골랐던 신축 아파트를 내놓았다. 그곳의 공기는 이미 오염되어 있었다. 거실 벽지마다 민준이 크레파스로 몰래 그려놓은 낙서가 있었고, 주방 곳곳에는 혜진이 차려주던 식탁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동훈은 그 기억들에 질식할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급매로 집을 넘겼다. 화려했던 34평형 아파트를 비우고 동훈이 선택한 곳은 회사 근처의 낡고 좁은 8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혼자 지내시기에 딱 좋네요. 옵션도 다 있고.”
부동산 중개인의 말은 비수가 되어 꽂혔다. '혼자'. 이제 동훈의 인생을 정의하는 단어는 그것뿐이었다. 이사 첫날, 동훈은 짐을 풀지도 않은 채 원룸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형 가구와 세련된 가전들은 대부분 중고 거래로 처분하거나 버렸다. 이 작은 방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오직 동훈의 옷가지와 몇 권의 책, 그리고 노트북뿐이었다. 창문 밖으로는 옆 건물의 회색 벽만이 보였고, 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아 방안은 늘 눅눅한 그늘이 져 있었다. 동훈은 그것이 정당한 형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선택한 용서 없는 정의에 대한 대가. 밤이 찾아오면 고통은 본색을 드러냈다. 원룸의 얇은 벽은 소음 차단에 무력했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TV 소리, 복도를 지나가는 발소리들이 동훈의 신경을 긁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집안 내부에서 들려오는 환청이었다.
“아빠! 이것 봐, 내가 만든 로봇이야!”
민준의 맑은 웃음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동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엔 아이 대신 차가운 냉장고가 웅웅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혜진이 샤워를 마치고 나와 풍기던 은은한 샴푸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것 같아 숨을 들이켜면, 돌아오는 것은 낡은 벽지에서 배어 나오는 곰팡이 냄새뿐이었다. 동훈은 매일 밤 술로 잠을 청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캔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며 취기가 오르기를 기다렸다. 취하면 환청이 멈출 줄 알았지만, 오히려 기억은 더 선명해졌다. 민준이 처음 걸음마를 떼던 날의 그 벅찬 감동, 혜진이 감기에 걸린 자신을 위해 끓여주던 죽의 따뜻함.
‘가짜였어. 그건 다 가짜였다고.’
동훈은 머리를 감싸 쥐며 되뇌었다. 하지만 심장은 머리의 명령을 거부했다. 혈연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 5년 동안 나누었던 체온과 교감이 가짜라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뇌는 ‘배신’이라 말하는데, 몸은 ‘그리움’이라 읽었다. 그는 이제 ‘자유’를 얻었다. 누군가를 책임질 의무도,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텅 빈 들판에 홀로 버려진 낙오자의 자유와 다를 바 없었다. 삶의 목적이 사라진 것이다. 예전에는 퇴근 시간이 기다려졌다. 아이를 위해 산 간식을 들고 엘리베이터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행복해했다. 하지만 이제 동훈은 퇴근 후 사무실에 혼자 남아 밤늦게까지 의미 없는 서류를 뒤적거렸다. 돌아가 봐야 반겨줄 이 없는, 차갑게 식은 8평짜리 동굴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까. 어느 날 밤, 동훈은 술에 취해 혜진의 번호를 눌렀다. 이미 결번이거나 차단되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신호음이 갔다. 하지만 응답은 없었다. 그는 전송하지 못할 메시지를 창에 적었다.
[민준이는… 알레르기 좀 어때? 약은 잘 먹이고 있어?]
손가락이 전송 버튼 위에서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다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보았다. 눈은 충혈되어 있고, 수염은 거칠게 자라 있었으며, 입고 있는 티셔츠엔 얼룩이 묻어 있었다.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결국 메시지를 지웠다.
“내가 버렸잖아. 내가 나가라고 했잖아.”
그는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꺽꺽대며 숨을 참았다. 좁은 원룸의 천장은 금방이라도 내려앉아 자신을 짓눌러 버릴 것만 같았다. 넓은 아파트에서 누리던 가짜 행복보다, 이 좁은 방에서 마주하는 진짜 고독이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다. 동훈은 깨달았다. 자신이 정말로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혜진의 외도가 아니라, 그 외도로 인해 자신이 사랑했던 ‘아빠로서의 삶’이 거세당했다는 사실임을. 그는 아이를 잃었고, 아내를 잃었으며, 무엇보다 가장 빛나던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동훈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환청 속에서 민준이 다시 아빠를 불렀다. 동훈은 환상인 줄 알면서도 손을 뻗어 허공을 휘저었다. 손끝에 닿는 것은 오직 서늘한 밤공기뿐이었다. 그가 얻은 법적 승리는, 결국 사랑하는 모든 것을 태워 없애고 남은 재와 같았다. 그렇게 동훈은 스스로 만든 작은 감옥 안에서, 천천히 말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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