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인간의 심리를 지배한다. 34평 아파트에서 세 사람은 각자의 방과 거리를 가질 수 있었지만, 8평 원룸에서 그들은 서로의 숨소리조차 피할 곳이 없었다. 현관문을 열면 침대가 보이고, 고개를 돌리면 화장실 문이 있다. 이 비좁은 사각형의 공간 안에서 동훈, 혜진, 그리고 민준의 기묘한 동거가 보름째 이어지고 있었다. 동훈은 퇴근 후 문을 열 때마다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현관에는 여전히 자신의 구두 옆에 혜진의 구두와 민준의 작은 운동화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6개월 전에는 당연했던 그 풍경이 이제는 누군가 연출해놓은 연극 무대의 소품처럼 생경했다.
"다녀왔어."
동훈의 인사는 공중에 흩어졌다. 주방 겸 복도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혜진이 뒤를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 왔어요? 씻고 앉아요. 바로 차릴게요."
혜진은 '여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동훈 역시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법적으로 남남이 된 두 사람 사이에는 투명하지만 단단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예전처럼 자연스러운 스킨십은 사라졌고, 옷을 갈아입을 때조차 서로의 시선을 피해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저녁 식사 시간은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이었다. 작은 접이식 탁자에 세 사람이 둘러앉으면 서로의 무릎이 닿을 정도였다. 민준은 아빠와 다시 살게 된 것이 마냥 좋은지 조잘조잘 유치원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빠, 오늘 유치원에서 그림 그렸는데, 우리 세 명 그렸어! 여기 아빠, 여기 엄마, 여기 민준이!"
아이가 내민 스케치북에는 서툰 솜씨로 그려진 세 사람의 형상이 있었다. 동훈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주었지만, 가슴 한구석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우리'라는 단어 속에 자신은 과연 어떤 자격으로 포함되어 있는가. 동훈의 시선은 문득 민준의 얼굴에 머물렀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준의 오뚝한 콧날, 약간 처진 눈꼬리. 그것은 동훈의 거울 속 모습과는 달랐다.
'이 아이의 코는 그 남자를 닮은 걸까. 저 눈매는 그놈의 것일까.'
한번 시작된 의심의 망령은 독초처럼 자라났다. 혜진이 반찬을 집어 민준의 밥 위에 얹어줄 때마다, 동훈은 그녀가 과거에 준수라는 남자와 나누었을 다정함을 떠올렸다. 이 아이가 만들어진 그 밤의 공기, 혜진의 배신, 그리고 5년 동안 자신을 속여온 위선.
"동훈 씨, 국이 좀 짜요?"
혜진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동훈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국그릇을 내려놓으며 차갑게 답했다.
"아니, 괜찮아."
동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좁은 방 안은 음식 냄새와 사람의 체온으로 금방 후끈해졌다. 숨이 막혔다. 이 좁은 방은 용서의 성전이 아니라, 고문의 방이었다. 밤이 되어 불을 끄고 누우면, '시한폭탄 같은 계약'이 어둠 속에서 째깍거렸다. 재결합의 조건은 명확했다.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미련 없이 떠날 것. 이 조건은 동훈에게 있어 최후의 자존심이자 배수진이었다. 그는 혜진을 완전히 믿지 못했기에 언제든 그녀를 내보낼 명분을 만들어두었고, 혜진은 속죄의 의미로 그 불평등한 계약에 서명했다. 하지만 이 조건은 역설적으로 동훈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퇴근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는 날이면, 혜진이 아이를 데리고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간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이 그를 괴롭혔다. 혜진이 스마트폰을 보고 웃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조건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을 다할 수 없다.'
동훈은 옆에서 쌔근쌔근 잠든 민준의 손을 만져보았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빠의 품을 파고들었다. 아이의 체온은 여전히 뜨겁고 순수했다. 동훈은 눈물을 삼켰다. 이 아이를 여전히 사랑하는 자신과, 아이의 존재적 근원을 증오하는 자신이 매일 밤 몸 안에서 싸우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혜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동훈 씨, 우리... 다시 혼인신고 하면 안 될까? 민준이 곧 학교도 가야 하고, 서류상으로도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동훈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대답했다.
"우린 이미 끝난 사이야. 지금 이건, 서로의 필요에 의한 동거일 뿐이지. 서류 따위로 가짜를 진짜로 만들고 싶지 않아."
혜진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동훈은 등을 돌려 누웠다.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지만, 그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8평 원룸의 벽은 너무나 얇아서 그녀의 울음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졌지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은하수보다 멀었다. 세 사람이 함께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각자 고립된 섬이었다. 동훈은 아이의 얼굴에서 타인의 흔적을 지우려 애썼고, 혜진은 동훈의 눈치 아래서 죄인처럼 숨을 죽였다. 민준만이 부서진 성의 잔해 위에서 위태로운 행복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것은 동훈이 꿈꾸던 재회가 아니었다. 그는 용서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증오를 박제하여 좁은 방안에 가두어둔 것에 불과했다. 사랑과 증오, 그리움과 의심이 한데 뒤섞인 채 썩어가고 있는 방. 그 위태로운 평화는, 동훈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균열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 '떠나기 조건'이 현실이 될 누군가의 등장이 멀지 않았음을, 세 사람은 아직 알지 못했다.

 

엑셀 하나로 업무 속도가 2!

당신의 경쟁력을 키워줄 엑셀 강의, 지금 네이버카페에서 시작하세요.

https://cafe.naver.com/excelit

 

엑셀팁과IT : 네이버 카페

엑셀, 파워포인트, 한셀, 워드, 핸드폰, 한글, 아이패드같은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IT의 사용법 강의,사용팁

cafe.naver.com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리지 블루(marriage blue) 8  (1) 2026.05.16
메리지 블루(marriage blue) 7  (0) 2026.05.15
메리지 블루(marriage blue) 5  (0) 2026.05.13
메리지 블루(marriage blue) 4  (0) 2026.05.12
메리지 블루(marriage blue) 3  (1) 2026.05.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