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은 소리 없이 찾아오지만, 비극은 언제나 요란한 전조 증상을 동반한다. 민준의 몸에 돋아난 붉은 반점들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은 태열이나 가벼운 두드러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점은 아이의 하얀 피부를 잠식하며 목덜미와 등줄기로 번져나갔다. 아이는 밤새 가려움에 몸을 뒤척이며 울었고, 동훈과 혜진의 잠자리도 그만큼 위태롭게 흔들렸다.
“단순한 알레르기가 아닌 것 같아요. 처방해 주신 연고를 발라도 그때뿐이에요.”
동훈은 동네 소아과 의사 앞에서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 그 평범한 권유가 동훈의 심장에 서늘한 칼날을 들이밀었다. 대학병원의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의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검사가 반복되었다. 혈액 검사, 피부 조직 검사, 그리고 각종 알레르기 반응 테스트. 그러나 민준의 증상은 기존의 데이터베이스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담당의인 김 교수는 차트를 넘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부모님 두 분 다 알레르기 내력이 없으신데, 아이의 면역 체계가 아주 특이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전적 요인을 좀 더 정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어요. 부모님 두 분과 아이, 세 사람의 유전자 정밀 검사를 진행해 봅시다.”
유전자 검사. 그 단어가 주는 생경함에 동훈은 잠시 멍해졌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 단어가 왜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걸까. 하지만 동훈은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지긋지긋한 알레르기의 원인을 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심정이었다. 혜진은 동훈의 곁에서 안색이 창백해진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동훈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걱정 마, 혜진아. 요즘 세상에 유전자 검사는 원인 찾으려고 다들 하는 거래. 검사 결과 나오면 금방 치료법도 나올 거야.”
혜진은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일주일 뒤,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동훈은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오늘이면 민준이 왜 아픈지 알게 될 것이고, 다시 예전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김 교수의 표정은 일주일 전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는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다가 긴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벗었다.
“임동훈 씨, 그리고 강혜진 씨. 일단 민준이의 알레르기 원인은 특정 면역 결핍 소인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저희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김 교수는 말을 아끼며 모니터를 동훈 쪽으로 돌렸다. 수많은 숫자와 영문 기호들이 어지럽게 나열된 검사지 하단, 굵은 글씨로 쓰인 결론부 문장이 동훈의 시야에 박혔다.
[결과: 친자 불일치 (Non-paternity)] - 부(父) 임동훈과 자(子) 임민준 사이의 친생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음.
순간, 진료실 안의 산소가 모두 빠져나간 듯 숨이 턱 막혔다. 동훈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불일치’라는 세 글자가 망막을 할퀴고 지나갔다.
“교수님, 이게… 무슨 오타인가요? 아니면 검사 결과가 바뀐 건가요?”
동훈의 목소리가 볼품없이 떨렸다.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옆에 앉은 혜진을 바라보았다. 혜진은 고개를 떨군 채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김 교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동훈을 응시했다.
“저희 병원은 검체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세 번이나 재검증을 거쳤습니다. 결과는 변하지 않습니다. 임동훈 씨는 민준 군의 생물학적 부친이 아닙니다.”
쾅, 하고 머릿속에서 거대한 성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의 다리가 바닥을 긁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내 아들입니다! 내가 5년을 키웠고, 나를 닮았고, 내 성바지 아이인데! 이까짓 종이 쪼가리 한 장이 뭐라고 내 아들이 아니라는 겁니까!”
동훈의 고함이 진료실 벽을 울렸다. 패닉이었다. 심장이 흉벽을 뚫고 나올 듯 요동쳤고,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분노가 해일처럼 밀려왔다가, 곧이어 형언할 수 없는 배신감이 독액처럼 온몸에 퍼졌다. 5년이라는 시간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 민준의 첫 걸음마, 첫 옹알이, 밤새 열이 나는 아이를 업고 뛰었던 기억들, 그 모든 소중한 조각들이 사실은 남의 것이었다는 잔인한 선고. 동훈은 옆에 앉은 혜진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 돌렸다.
“말해봐, 혜진아. 저 의사가 거짓말하는 거지? 저 기계가 고장 난 거지? 어서 말해!”
혜진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동훈의 가슴에 확인 사살을 퍼부었다. 혜진의 침묵은 곧 긍정이었고, 동훈이 믿어온 5년의 역사가 거대한 사기극이었음을 증명하는 마침표였다. 동훈은 진료실을 뛰쳐나왔다. 병원 복도의 하얀 벽들이 자기를 비웃으며 좁혀오는 것 같았다. 엇갈려 지나가는 간호사들, 아픈 아이를 안고 있는 다른 부모들, 그 평범한 풍경 속에서 오직 자신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병원을 나선 동훈은 정처 없이 걸었다.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대로변에서도, 사람으로 북적이는 지하철역에서도 동훈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문장만 맴돌았다.
‘나는 아빠가 아니다.’
그는 공원 벤치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손끝에 닿는 자신의 머리카락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5년간 민준을 안아주었던 이 팔은 누구의 아이를 안았던 것인가.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그 입술은 누구의 여자를 찬양했던 것인가. 문득 스마트폰 배경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민준이 활짝 웃으며 브이자를 그리고 있는 사진. 동훈은 비명을 지르며 휴대폰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액정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민준의 웃는 얼굴 위로 금이 갔다.
“아니야… 이건 꿈이야. 말도 안 돼.”
동훈은 중얼거렸다. 하지만 주머니 속에 구겨 넣은 검사 결과지의 서늘한 촉감은 이것이 꿈이 아님을 증정하고 있었다. 태양은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동훈의 세계는 이미 영원한 겨울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완벽했던 유리 성은 이제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동훈의 온몸을 찌르고 있었다. 그는 이제 돌아가야 했다. 그 지옥 같은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 더 이상 자신의 집이 아닌 그곳으로. 혜진의 입에서 나올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동훈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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