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메리지 블루(marriage blue), 결혼하기 직전 신랑이나 신부가 불안이나 우울감 등을 느끼는 현상
햇살이 유난히도 부드럽게 부서지던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통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거실 바닥에 놓인 아이의 알록달록한 블록 위로 내려앉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혜진은 주방에서 갓 구운 애플파이 향기를 풍기며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동훈은 거실 한복판에서 다섯 살배기 아들 민준의 비행기가 되어 거실을 유영하고 있었다.
“자, 민준 기장님! 곧 안방 터미널에 착륙합니다. 꽉 잡으세요!” “꺄아아! 아빠, 더 높이! 더 높이!”
아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동훈은 아이를 품에 안고 뱅글뱅글 돌며 생각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삶이 있을까. 두 사람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굴지의 IT 기업, 신입 사원 연수회에서 동훈은 혜진을 처음 보았다. 화사한 미소와 당당한 태도로 주목받던 혜진과, 듬직하고 명석한 두뇌로 동기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동훈. 두 사람이 사내 커플이 되었다는 소식은 한동안 회사의 가장 큰 화제였다. ‘선남선녀’, ‘사내 공인 1호 커플’이라는 수식어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결혼을 결심한 후, 두 사람은 회사 근처의 햇살 잘 드는 신축 아파트에 신혼집을 꾸렸다. 누구보다 빨리 안정을 찾고 싶었던 동훈의 고집으로 결혼식 6개월 전부터 미리 동거를 시작했다. 퇴근 후 함께 장을 보고, 나란히 앉아 내일의 업무를 공유하며, 가끔은 와인 한 잔에 미래를 설계하던 그 반년의 시간은 동훈에게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예고편과 같았다. 결혼식은 화려했다. 업계 거물들과 수많은 동료의 축복 속에 혜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찾아온 ‘허니문 베이비’.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동훈은 제자리에서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내 뿌리를 닮은, 내 사랑의 결실이 세상에 나온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했다.
“혜진아, 고마워. 정말 잘할게. 내가 너랑 우리 아기, 평생 유리 성 안에서 공주님, 왕자님처럼 지켜줄게.”
그 약속은 빈말이 아니었다. 민준이 태어난 후 동훈의 세계는 오직 아내와 아들을 중심으로 자전했다. 퇴근 후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되었고, 주말이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한강 변을 산책하거나 아이의 감성 발달에 좋다는 전시회를 찾아다녔다. 민준은 동훈을 쏙 빼닮은 듯했다. 진한 눈썹과 웃을 때 반달 모양이 되는 눈매, 그리고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까지. 동훈은 민준의 작은 손가락 하나하나를 만지며 기적을 느꼈다. 아이가 처음 ‘아빠’라고 옹알이를 하던 날, 동훈은 그 소리를 녹음해 하루 종일 회사에서 반복해 들으며 실없이 웃음을 흘렸다. 동료들은 그런 동훈을 보며 ‘아들 바보’라고 놀려댔지만, 그는 그 별명이 세상 어떤 직함보다 자랑스러웠다.
혜진 역시 완벽한 아내이자 엄마였다. 육아로 지칠 법도 한데 늘 단정한 모습으로 동훈을 맞이했고, 집안은 언제나 먼지 하나 없이 정갈했다. 가끔 혜진의 눈가에 스치는 원인 모를 공허함을 동훈이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독박 육아에 대한 피로감이나, 워킹맘으로서의 복귀 고민 때문이라 짐작하며 더 큰 사랑으로 보답하려 애썼다. 민준의 다섯 번째 생일날, 두 사람은 거창한 파티 대신 세 식구만의 오붓한 캠핑을 계획했다. 거실에 텐트를 치고 은하수 무드등을 켠 채, 세 사람은 나란히 누웠다.
“아빠, 나 아빠만큼 키 커지면 아빠 지켜줄게.”
민준이 작은 손으로 동훈의 뺨을 만지며 속삭였다.
“허허, 우리 아들이 아빠를 지켜준다고? 고맙네. 아빠는 민준이가 건강하기만 하면 바랄 게 없어.”
동훈은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옆에 누운 혜진의 손을 꼭 잡았다. 혜진의 손등 위로 차가운 금속 반지가 닿았다. 영원한 사랑의 맹세. 동훈은 이 행복이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견고한 유리 성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성벽 밖에서 어떤 폭풍이 불어오든, 이 안은 안전하며 따뜻할 것이라고.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가장 평화로운 순간에 독니를 드러내는 법이다. 그날 밤, 민준이 자다가 긁는 소리에 동훈은 잠에서 깼다. 아이의 팔과 다리에 돋아난 붉은 반점들. 그것은 견고했던 유리 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첫 번째 균열이었다.
동훈은 그저 가벼운 아토피나 음식 알레르기일 것이라 생각하며 아이를 달랬다. 하지만 혜진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동훈은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괜찮아, 혜진아. 내일 병원 가면 금방 나을 거야. 별일 아닐 거야.”
동훈은 혜진을 다독이며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혜진은 그 밤,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창밖의 시커먼 어둠만을 응시했다. 자신들이 공들여 쌓아 올린 이 완벽한 유리 성이, 사실은 모래 위에 세워진 신기루였다는 사실을 그녀만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마주하게 될 그 잔인한 진실이, 5년 동안 지켜온 ‘가족’이라는 이름의 평화를 산산조각 낼 준비를 마친 채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했던 거실의 온기가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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