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의 전광판은 꺼졌고, 수사본부의 화이트보드에는 오직 한 사람의 사진만이 남겨졌다. 박 형사는 취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찢어진 티켓 반쪽과 피 묻은 장갑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가면을 벗으시죠, 동욱 씨."
동욱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기괴할 정도로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헌신적이고 눈물 많던 '현 남친'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제가 어디서 실수한 걸까요, 형사님?"
동욱은 예지의 새로운 출발을 돕는 '안식처'를 자처했지만, 실상은 그녀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던 가스라이팅의 화신이었다. 그는 예지가 전남편 기석에게 위자료를 독촉하고, 전 동거남 준석의 비리를 캐는 모든 과정을 '과거에 대한 미련'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깨끗해져야 했어요. 기석이나 준석 같은 쓰레기들이 그녀의 인생에 남아있는 한, 예지는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으니까."
사건 당일, 동욱은 예지의 뒤를 밟았다. 8회 초, 예지가 화장실 앞에서 전남편 기석을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 화근이었다. 예지는 기석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모든 원한은 오늘로 끝이야. 돈도, 녹취록도 다 정리하고 난 이제 내 삶을 살 거야."
하지만 동욱의 비뚤어진 귀에는 그 말이 "기석과 화해하고 나를 떠나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극도의 불안감과 소유욕이 폭발한 동욱은 7회에 미리 식당에서 훔쳐둔 과도를 꺼내 들었다. 그는 예지를 화장실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예지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그가 범인임을 알리기 위해 손을 뻗어 동욱의 주머니에 있던 티켓(동욱이 기석을 범인으로 몰기 위해 훔쳐둔 T-102석 티켓)을 낚아챘다. 동욱은 그것도 모른 채, 그녀가 죽어가는 순간 선영의 폰을 이용해 메시지를 조작하고, 립스틱을 훔쳐 선영의 가방에 넣는 등 치밀한 알리바이를 설계했다.
"내가 그녀를 구원한 거야!"
"당신은 예지 씨를 사랑한 게 아니라, 당신이 만든 '인형'을 사랑한 겁니다."
박 형사의 일침에 동욱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소리쳤다. 
"아니! 난 그녀를 구원한 거야! 그 더러운 과거들로부터 내가 해방해준 거라고! 만루홈런이 터질 때 사람들은 환호했지? 나도 환호했어. 드디어 예지가 영원히 내 곁에 머물게 됐으니까!"
동욱은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사랑'이라 우겼다. 하지만 그가 휘두른 칼날은 사랑이 아닌, 한 여성이 간절히 바랐던 '새로운 삶'을 난도질한 잔인한 폭력이었을 뿐이다.
며칠 후, 텅 빈 야구장 관중석에는 주인을 잃은 히포즈 응원 수건 하나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기석은 파멸했고, 준석과 선영은 법의 심판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예지를 가장 아껴주는 척했던 동욱은 차가운 철창 안으로 사라졌다. 역전 만루홈런의 함성은 화려했지만, 그 소음에 가려진 진실은 너무나도 시리고 아팠다. 가장 믿었던 안식처가 가장 날카로운 흉기가 되어 돌아온 사건. 강예지가 마지막 순간 쥐고 있었던 것은 단순한 티켓 조각이 아니라,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본다"는 세상에 대한 서글픈 경고였을지도 모른다.​

그후,
강예지 살인사건이 종결되고 한 시즌이 지났다. 히포즈의 우승컵은 박물관의 박제가 되었고, 그날의 비극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용의자들의 삶은 그날 이후 영원히 바뀌어 버렸다.
진범으로 밝혀진 동욱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오히려 면회 온 변호사에게 "예지는 이제 다른 남자들이 쳐다볼 수 없는 곳에 있으니 안전하다"며 기이한 미소를 짓곤 한다. 그의 좁은 감방 벽에는 신문에서 오려낸 예지의 흐릿한 사진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는 죽어서야 그녀를 완벽히 '소유'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전남편 기석은 살인 혐의는 벗었지만,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불법 도박과 상습적인 외도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야구계에서 영구 제명되었다. 그가 운영하려던 유소년 아카데미는 투자자들이 줄줄이 등을 돌리며 파산했다. 아내 영은과는 이혼 소송 중이다. 영은은 '남편을 뺏은 여자'라는 낙인과 함께 구단 홍보팀에서 해고되었고, 현재는 이름을 바꾸고 지방을 전전하며 숨어 지내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증오하며 남은 생을 법정에서 보낼 예정이다.
예지 명의의 서류를 위조해 사채를 끌어다 썼던 준석과 선영은 결국 사기 및 사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다. 준석은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사채업자들의 끈질긴 추심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선영은 옥중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하지만 아이의 눈을 볼 때마다 자신이 예지에게 저질렀던 배신과, 예지가 퍼부었던 마지막 저주가 귓가를 맴돌아 극심한 환청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절친이었던 우정의 대가는 너무나 처참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째 되는 날, 잠실 야구장의 T-102 구역에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두고 간 하얀 국화 한 송이와 야구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야구공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당신만의 경기를 즐기길."
야구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새로운 함성 소리가 하늘로 울려 퍼지는 동안, 국화꽃 잎 하나가 바람에 날려 먼지 낀 화장실 창틀 너머로 사라졌다. 축제는 계속되지만, 그날의 진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야구장은 더 이상 단순한 유희의 공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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