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이 짙게 깔린 대학병원,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병원의 불빛은 완전히 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과 사의 경계가 흐릿한 이곳에서는 가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곤 하죠. 오늘은 수많은 병원 괴담 중에서도 가장 가슴 시리고도 섬뜩한, 어느 소아과 병동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보안 요원 박 씨는 그날 밤의 공기를 잊지 못합니다. 유난히 달빛이 창백하던 목요일 새벽 2시경이었습니다. 구관 소아과 병동은 리모델링을 앞두고 환자들을 신관으로 모두 옮긴 터라, 텅 빈 복도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죠. 박 씨가 손전등을 비추며 복도 끝을 향할 때였습니다.
'통... 통... 데구르르...'
분명 아무도 없어야 할 복도 저편에서 무언가 바닥을 튀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리가 나는 곳은 복도 끝, 폐쇄된 격리 병동 방향이었습니다. 박 씨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이제 면회 시간 지났어요."
손전등 불빛이 닿은 곳에는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병원복을 입은 채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는 무릎을 모으고 앉아 고무공을 벽에 던지고는 다시 받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박 씨는 안도와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린애가 잠이 안 와서 몰래 나왔나 보군'이라 생각한 그는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얘야, 밤이 너무 깊었구나. 선생님들이 찾으시겠어. 얼른 병실로 들어가야지?"
아이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대신 손에 쥐고 있던 빨간 공을 복도 끝으로 천천히 굴렸습니다. 공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격리 병동'이라고 적힌 굳게 닫힌 문 앞에 멈춰 섰습니다. 박 씨는 공을 주워주기 위해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 찰나,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박 씨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박 씨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달빛 아래 드러난 아이의 얼굴은 평범한 아이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도, 코도, 입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가 달걀처럼 얼굴 전체를 덮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자리엔 기괴한 정적만이 감돌았고, 아이는 입도 없이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공기 중으로 흩뿌렸습니다.
박 씨는 공포에 질려 그대로 도망쳤고, 다음 날 이 사실을 병원 관계자들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병원 측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이미 몇몇 간호사와 청소부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달걀 귀신'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에 얽힌 비극적인 사건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소아암 병동에 입원 중이던 '지훈(가명)'이는 병동 아이들과 숨바꼭질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숨바꼭질이 한창이던 어느 날 저녁, 술래였던 아이가 아무리 찾아도 지훈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병원 전체에 비상이 걸렸고, 경찰까지 동원되어 수색했지만 지훈이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지하실 세탁실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습니다. 대형 세탁물 수거함 깊숙한 곳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지훈이가 발견된 것입니다.
범인은 '세탁물 투입구(Laundry Chute)'였습니다. 각 층 복도 구석에 설치된 이 투입구는 린넨과 시트를 던지면 곧장 지하실로 떨어지는 구조였는데, 당시 투입구 문 중 하나가 고장으로 헐겁게 닫혀 있었습니다. 숨바꼭질을 하던 지훈이는 가장 완벽한 은신처라고 생각하며 그 좁은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던 것이죠. 수직으로 떨어진 지훈이는 그 위로 쏟아지는 수백 킬로그램의 오염된 시트와 환자복 더미 아래에 깔리고 말았습니다. 소리를 질러도 두꺼운 천 더미에 파묻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고, 아이는 그 어둡고 눅눅한 곳에서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길 기다리며 서서히 숨이 끊어져 갔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지훈이가 얼굴이 없는 이유는, 너무 오랜 시간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벽을 긁다 보니 얼굴의 형체마저 지워져 버린 것이라고요. 혹은, 자신을 찾아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서운함이 얼굴을 지워버린 것이라고도 합니다.
오늘도 소아과 병동의 밤은 깊어갑니다. 만약 여러분이 병원 복도를 걷다가 발치에 툭, 하고 떨어진 공을 발견한다면 절대 그 공을 줍지 마세요. 그건 지훈이가 당신에게 건네는 위험한 제안입니다.
"이제... 네가 술래야."
병원이라는 공간은 치유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가장 무서운 마지막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밤, 병원 복도를 지날 때 등 뒤가 서늘하다면 혹시 누군가 당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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