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랜서 디자이너 민수는 최근 독립하며 자취방을 꾸미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에 새 가전을 사기란 부담스러웠고, 자연스레 중고 거래 앱을 뒤적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을 의심케 하는 매물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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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된 지 1년도 안 된 대기업의 플래그십 모델이었다. 판매자의 설명은 짧았다. '집안 분위기와 맞지 않아 내놓습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민수는 앞뒤 재지 않고 판매자의 집으로 향했다. 판매자는 수척한 얼굴의 중년 남성이었는데, TV를 건네주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돈을 받자마자 도망치듯 현관문을 닫았다.
"운이 좋았네. 이 정도면 로또 맞은 거지."
민수는 들뜬 마음으로 거실 한복판에 거대한 TV를 설치했다. 선명한 화질과 압도적인 크기. 하지만 그날 밤부터, 민수의 완벽했던 거실에 기묘한 위화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새벽 2시, 작업을 마치고 침대에 누운 민수는 거실 쪽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눈을 떴다. 거실로 나가보니 전원을 끈 TV 상단의 카메라 렌즈 옆에 작은 파란색 LED가 깜빡이고 있었다. 보통 대기 모드일 때는 빨간색 불이 들어와야 정상이었다.
"업데이트 중인가?"
민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파란 불빛은 새벽마다 켜졌다. 마치 누군가 캄캄한 거실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눈동자처럼 느껴졌다. 찝찝한 마음에 설정 메뉴를 뒤지던 민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메뉴 트리에는 존재하지 않는, 숨겨진 항목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 고급 설정 > 시청자 분석 모드 : 활성 ]
민수는 해당 메뉴를 클릭했다. 그러자 화면이 갑자기 전환되며 거실의 모습이 흑백 적외선 화면으로 나타났다. TV에 내장된 카메라가 촬영 중인 실시간 영상이었다. 그런데 화면 하단에 출력되는 데이터 로그가 민수의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현재 시청 인원 분석 중...]
관찰 대상 A (식별됨: 주인) - 생존 상태: 정상
관찰 대상 B (식별 불능) - 생존 상태: 데이터 없음
관찰 대상 C (식별 불능) - 생존 상태: 데이터 없음
관찰 대상 D (식별 불능) - 생존 상태: 데이터 없음
화면 속 텅 빈 소파 위에는 민수 혼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는 네 명의 시청자가 함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민수는 공포를 억누르며 화면을 자세히 살폈다. 적외선 카메라 특유의 노이즈 섞인 화면 속에서, 소파에 앉은 자신의 그림자 옆으로 세 개의 검은 형체가 아른거렸다. 그것들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이목구비가 없이 뻥 뚫린 구멍만 가득했다. 그들은 민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거나, 민수의 발치에 웅크리고 앉아 함께 TV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민수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파에서 일어나자, 화면 속 검은 형체들도 일제히 고개를 돌려 카메라 즉, TV 앞의 민수를 바라보았다. 현실의 거실은 적막했다. 아무도 없었다. 오직 TV 화면 속에서만 그들이 존재했다. 민수는 당장 전원 코드를 뽑으려 달려갔다. 하지만 손을 뻗는 순간, TV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낯선 음성이 흘러나왔다.
"시청 환경이 불안정합니다.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민수는 코드를 붙잡은 채 멈췄다. 화면 속에서, 가장 덩치가 큰 검은 형체가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화면의 경계를 넘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거대해졌다. 민수는 비명을 지르며 코드를 뽑아버렸다. 화면은 암전되었고 거실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민수는 안도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꺼진 TV의 매끄러운 블랙 패널에 거실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쳤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 덕분에 실루엣이 보였다. 민수는 거울 같은 화면 속에서, 자신의 등 뒤에 아까 보았던 검은 형체들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제 화면 속 데이터가 아니었다.
스으으...
차가운 냉기가 목덜미를 스쳤다. 민수는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한 채 굳어버렸다. 그때, 다시 TV가 스스로 켜졌다. 전원 코드는 분명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화면에는 아까보다 더 명확해진 로그 기록이 떴다.
[사용자 동기화 완료]
시청 인원: 4명
상태: 모두 '비생존'으로 통합 중... [메시지] 즐거운 시청 시간 되십시오. 당신도 이제 우리의 데이터입니다.
민수의 몸이 서서히 굳어갔다. 손끝부터 감각이 사라지고, 몸이 마치 디지털 신호로 분해되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TV 화면 속 민수의 모습은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다른 세 형체와 똑같은 '검은 그림자'로 변해갔다. 다음 날 아침, 중고 거래 앱에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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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에 첨부된 사진 속 TV 화면에는 평화로운 거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화면 구석에 있는 소파 위에 네 명의 검은 그림자가 나란히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다. 판매자의 프로필 사진은 어제 TV를 샀던 민수의 얼굴이었지만, 닉네임은 '데이터 수집가'로 바뀌어 있었다.
지금 당신의 거실에 놓인 스마트 TV는 안녕한가? 혹시 밤마다 파란 불빛이 깜빡이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절대 그 '시청자 모드'를 확인하지 마라. 당신이 TV를 보는 것이 아니라, TV 속의 '그들'이 당신을 새로운 시청자로 영입하기 위해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AI가 우리를 분석하고 관찰하는 시대, 가전제품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우리를 감시하는 눈이 될 수 있다는 상상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오늘 밤, TV 코드를 뽑아두는 건 어떨까요? 물론, 코드를 뽑는다고 해서 그들이 사라질지는 알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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