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에필로그 - 신의 눈물은 돌아오지 않는다
오전 11시.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처럼 사무실은 기묘한 정적에 휩싸였다. 칸막이 너머로 간간이 들리던 박 과장의 타이핑 소리도, 최 사원의 아령 부딪치는 소리도 잦아들었다. 모두가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신의 눈물'이라 불리는 파나마 게이샤를 설탕물과 우유 거품, 그리고 헤이즐넛 시럽의 혼종으로 만들어 박 부장의 위장 속으로 송출해버린 '공범자'들의 뒤늦은 죄책감이었다. 나는 묵묵히 탕비실로 향했다. 내 손에는 어제보다 더 비장한 각오로 챙겨온 인도네시아 만델링 원두 봉지가 들려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수동 그라인더를 돌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화사한 꽃향기는 간데없고, 젖은 흙내음과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의 향이 탕비실을 잠식했다. 나는 온도계의 바늘이 96도를 가리킬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96도. 원두의 모든 고통과 쓴맛을 남김없이 뽑아내기에 최적화된, 가차 없는 온도다.
"김 대리... 화 많이 났어? 내가 진짜 몰라서 그랬다니까."
박 과장이 슬금슬금 탕비실로 들어와 눈치를 살폈다. 그의 손에는 미안함의 표시인지 편의점에서 사 온 1+1 초코바가 들려 있었다.
"아뇨, 과장님. 화 안 났습니다. 덕분에 커피는 혼자 마시는 게 아니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나는 무표정하게 만델링의 검은 액체를 커다란 유리 포트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어제 박 부장이 극찬했던 '영양 샘플'이라는 라벨을 다시 붙였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내 몫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혀끝을 타고 넘어가는 묵직한 바디감과 강렬한 쓴맛. 어제의 게이샤가 천상의 산들바람이었다면, 오늘의 만델링은 지옥의 용암 같았다. 나는 어제 '사건'의 중심이었던 본차이나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깨끗하게 씻어 말려두었지만, 왠지 모르게 잔 가장자리에서 여전히 재스민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100g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던 그 귀한 액체는 이제 하수구와 박 부장의 혈관을 지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커피 매니아로서 가장 슬픈 것은 커피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나의 '집착'과 '진심'이 타인에 의해 너무나 쉽게 변질되고 희화화되었다는 사실이었다. 85.5도의 섬세한 산미를 이해받지 못하고, '시큼해서 상한 물' 취급을 당하며 설탕 한 바가지에 덮여버린 그 운명. 그것은 어쩌면 이 삭막한 사무실에서 내 진심을 지키려 애쓰는 나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오후가 되자 박 부장이 다시 사무실로 나왔다. 그는 배를 툭툭 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이, 김 대리! 오늘 '샘플'은 어제보다 좀 진하네? 근데 어제 그 상큼한 맛이 안 나! 난 그게 좋던데!"
"부장님, 그 상큼한 맛은 '한정판'이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이 묵직한 맛으로 갑니다."
박 부장은 껄껄 웃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최 사원과 이 대리, 정 주임이 줄줄이 탕비실로 향했다. 그들은 내가 내린 만델링을 마시고는 "우와, 진짜 쓰다!", "이거 사약 아니에요?"라며 비명을 질렀다. 결국 그들은 다시 자기들의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박 과장은 노란색 믹스커피를 뜯었고, 최 사원은 맹물을 마셨으며, 이 대리는 배달 앱으로 '시럽 잔뜩 넣은 라떼'를 주문했다. 정 주임은 다시 무색무취의 존재로 돌아가 탕비실 사탕을 까먹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무실에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평화'가 찾아왔다. 누구도 내 칸막이 안의 향기를 탐내지 않았고, 누구도 내 온도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는 철저히 고립되었고, 그 고립 속에서 비로소 온전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퇴근 시간. 가방을 챙기던 나는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작은 원두 봉지 하나를 더 발견했다. 어제 쏟아버린 게이샤의 마지막 남은 20g이었다. 나는 미소 지었다. 신의 눈물은 돌아오지 않지만, 내일의 태양은 다시 뜨고, 새로운 물은 다시 끓을 것이다. 내일은 다시 93도를 맞출 것이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샘플이라 속이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한 가장 고결한 한 잔을 내릴 것이다. 사무실 불이 꺼지고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며 나는 중얼거렸다.
"그래도... 설탕은 좀 심했지, 과장님."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커피 향이 내일의 출근을 예고하고 있었다. 미스터리는 풀렸고, 범인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커피 매니아의 위대한 집착은 내일 아침 8시 20분, 다시 시작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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