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오피스텔 804호. 서른 살 직장인 지영에게 퇴근 후의 루틴은 정해져 있었다. 현관 도어락의 육중한 기계음이 '띠리릭' 울리면, 문 앞에 쌓인 택배 박스들을 집 안으로 들여놓는 것. 쇼핑 앱에서 주문한 생필품과 가끔 지르는 소소한 사치품들은 삭막한 서울 살이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날은 유독 비가 내려 복도가 습했다. 지영은 평소처럼 문 앞에 놓인 생수 묶음과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상자를 들어 올린 바닥에, 빗물에 젖지 않은 새카만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가 잘못 두고 갔나?"
봉투에는 아무런 주소도, 보낸 이의 이름도 없었다. 오직 정중앙에 정갈한 만년필 글씨로 지영의 이름 세 글자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지영은 의아해하며 봉투를 뜯었다. 안에는 빳빳한 수입지 카드 한 장이 들어있었다.
[오늘 저녁 식사는 맛있었나요? 제육볶음 냄새가 복도까지 나서 기분이 좋더군요.]
순간 지영의 뒷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오늘 퇴근길에 반찬 가게에서 제육볶음을 사 온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오피스텔 복도는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냄새가 남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누군가 자신의 일상을 지켜보고 있다는 불쾌함은 가시지 않았다.
다음 날 퇴근길, 지영은 일부러 편의점 도시락을 사 들고 왔다. 혹시라도 음식 냄새로 누군가 자신을 파악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문 앞에는 어제 주문한 화장품 택배가 도착해 있었다. 상자를 조심스레 들어 올리자, 어김없이 그 검은 봉투가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지영은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꺼냈다.
[편의점 도시락은 건강에 좋지 않아요. 어제 먹다 남은 상추가 냉장고 두 번째 칸에 있던데, 같이 곁들여 먹지 그랬어요.]
지영은 비명을 지르며 카드를 내팽개쳤다. 냉장고 두 번째 칸. 그것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야만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지영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CCTV를 확인해 봤는데, 택배 기사님 외에는 복도에 지나간 사람이 없네요. 택배 기사님도 박스만 두고 바로 가셨고요. 스토킹 정황은 보이지만 물증이 부족합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꾸시고 홈캠을 설치해 보세요."
지영은 그 자리에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꾸고, 거실과 현관을 비추는 최신형 홈캠을 설치했다. 이제 안전할 거라 믿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새벽 2시. 스마트폰 알람이 울렸다. 홈캠 앱에서 '움직임 감지' 알림이 뜬 것이다. 지영은 이불속에서 숨을 죽인 채 실시간 영상을 확인했다. 화면 속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거실엔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때였다. 화면 하단, 현관문 밑바닥의 좁은 틈새로 하얗고 얇은 종이 한 장이 스르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종이는 바닥을 기어 거실 한복판까지 미끄러져 들어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센서등조차 켜지지 않았다. 오직 문틈 사이로 종이만이 '침입'하고 있었다. 지영은 홀린 듯 거실로 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뒤집자, 어제의 정갈한 글씨는 온데간데없고 거칠고 비뚤비뚤한 글씨가 종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문 바꿨네? 근데 소용없어. 난 이미 들어와 있거든.]
지영은 심장이 멈추는 듯한 공포를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집 안은 비어 있었다. 다시 홈캠 영상을 되감기 하던 지영의 눈에 기이한 장면이 포착됐다. 종이가 문틈으로 들어오기 직전, 거실 구석에 세워둔 전신거울 뒤편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아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다. 그림자는 사람의 형상이라기엔 너무나 길쭉하고 기괴했다. 공포가 극에 달한 지영은 짐을 쌀 겨를도 없이 외투만 걸친 채 집을 뛰쳐나가려 했다. 현관으로 달려가 도어락을 열려는데, 스마트폰에 다시 알람이 왔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지영은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확인했다. 그것은 검은 봉투를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배경은 다름 아닌 지영의 침대 위였다. 그리고 메시지 하단에는 마지막 '초대장'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디 가요? 당신이 좋아하는 향수를 침대 시트에 뿌려뒀는데. 이제 같이 자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영은 현관문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집 안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었다. 그때, 방 안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라기엔 너무나 건조하고 기계적인, 마치 종이가 쓸리는 듯한 소리였다.
"지영아... 침대 밑은... 생각보다 따뜻해..."
지영은 비명을 지르며 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경찰을 다시 불렀다. 경찰과 함께 다시 들어온 804호. 집 안은 정돈되어 있었고, 침대 밑에도, 전신거울 뒤에도 아무도 없었다. 단 하나, 침대 시트 위에는 지영이 평소 아끼던 향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고, 그곳엔 낡은 택배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영은 그날로 오피스텔을 떠났다. 본가로 내려가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숨어 지냈다. 하지만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이사 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본가 대문 앞에 커다란 택배 박스가 도착했다. 지영은 공포에 질려 박스를 치우지도 못하고 지켜보았다. 한참 뒤, 용기를 내어 박스를 들어 올린 지영의 눈앞에 익숙한 검은 봉투가 놓여 있었다. 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지영의 본가 거실에서 잠든 지영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사진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새 집은 택배 받기가 편해서 좋네요. 다음엔 내가 박스 안에 들어가 있을게요. 기대해요.]
오늘도 혼자 사는 누군가의 문 앞에는 택배가 쌓인다. 그리고 당신이 무심코 박스를 집 안으로 들일 때, 그 바닥에 붙어 있는 검은 종이를 조심하라. 그것은 당신의 일상으로 들어오겠다는, 거절할 수 없는 '그것'의 초대장일지도 모른다.

비대면 사회의 상징인 택배가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변하는 순간을 그려보았습니다. 문 앞의 택배를 들일 때, 혹시 바닥에 얇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보세요. 어쩌면 당신이 들인 것은 물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림자일 수 있습니다.

 

엑셀 하나로 업무 속도가 2!

당신의 경쟁력을 키워줄 엑셀 강의, 지금 네이버카페에서 시작하세요.

https://cafe.naver.com/excelit

 

엑셀팁과IT : 네이버 카페

엑셀, 파워포인트, 한셀, 워드, 핸드폰, 한글, 아이패드같은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IT의 사용법 강의,사용팁

cafe.naver.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