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또다른용의자, 무색무취의 정 주임과 한 사원
박 과장의 ‘설탕 테러’, 최 사원의 ‘강제 이송’, 그리고 이 대리의 ‘라떼 개조’까지. 내 소중한 파나마 게이샤는 이미 사무실 한 바퀴를 돌며 만신창이가 된 채 내 책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이 대리는 분명히 말했다. "거품 맛만 살짝 보고 다시 돌려놓았다"고. 그렇다면 잔 안에는 최소한 150ml의 '게이샤-설탕-라떼'라는 기괴한 혼종 액체가 남아 있어야 했다.
내가 부장실에서 나오기 직전의 그 운명의 3분. 그 찰나에 잔을 설거지라도 한 듯 깨끗이 비워버린 최종 포식자가 이 칸막이 생태계 안에 숨어 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마지막 두 명의 용의자를 응시했다.
정 주임은 우리 팀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MBTI를 검사하면 아마 ‘익명(ANON)’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하지만 그의 책상 서랍은 ‘금단의 블랙홀’이다. 탕비실에 새로 들어온 카스타드, 몽쉘, 심지어 사장님이 명절 선물로 보낸 조미김 세트까지 어느샌가 그의 서랍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정 주임의 자리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그는 지금 아주 평온한 얼굴로 엑셀 숫자를 입력하고 있었다.
"정 주임님, 아까 향기가 참 좋았죠? 꽃집 냄새가 사무실 전체에 진동하더라고요."
정 주임이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방향제 바꾸신 줄 알았어요. 라벤더인가요?"
"방향제가 아니라 제 커피였습니다. 그런데 이 대리님이 제 잔을 다시 가져다 놓은 뒤로, 누군가 그걸 ‘원샷’ 해버렸거든요. 혹시 지나가다 보신 거 없나요?"
정 주임의 마우스 클릭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그는 평소 물을 하루에 3리터씩 마시는 '수분 중독자'다. 갈증을 참지 못하는 그의 본능이, 주인 없는 잔(심지어 우유 거품까지 올라간 달콤해 보이는 잔)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까?
"전... 전 모릅니다. 아까 화장실 다녀오느라 자리에 없었거든요."
알리바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책상 구석, 서류 더미 사이에 숨겨진 종이 홀더를 발견했다. 내가 아침에 원두를 린싱할 때 썼던 그 홀더와 무늬가 일치했다.
"정 주임님, 화장실 가셨다면서 이 홀더는 왜 주임님 책상 위에 있죠? 이건 제 커피 잔에 끼워져 있던 건데요."
정 주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건... 지나가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예뻐 보여서 주운 거예요! 재활용하려고요!"
내 시선은 이제 마지막 용의자, 막내 한 사원에게 꽂혔다. 그녀는 지금 아주 경건한 태도로 생오이를 아작아작 씹고 있었다. 최근 ‘바디 프로필’을 찍겠다며 탄수화물과 당분을 완전히 끊은 그녀다. 지독한 식단 조절로 인해 그녀의 눈등기는 늘 굶주린 늑대처럼 번뜩였다.
"한 사원, 다이어트 힘들지? 아까 그 커피, 향기만으로도 당 충전이 되는 기분이던데 유혹을 견디기 힘들었겠어."
한 사원이 오이를 씹다 말고 멈췄다. 
"아니요, 대리님! 전 의지의 한국인이에요. 블랙커피는 써서 싫어하지만, 아까 대리님 자리에 있던 건... 뭐랄까, 향기만으로도 칼로리가 느껴지더라고요. 전 냄새만 맡고 참았어요."
"냄새만 맡았다고? 그런데 왜 입술 위에 미세한 하얀 자국이 남아 있지? 우유 거품 같은데."
나는 한 사원의 인중 부위를 가리켰다. 그녀가 황급히 손을 들어 입을 닦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나의 ‘유도 신문’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낚이셨네요, 한 사원."
한 사원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대리님! 진짜 너무해요! 저 진짜 안 마셨어요! 이 대리님이 잔을 내려놓는 건 봤지만, 전 그냥 오이만 씹었다고요! 정 주임님이 제 옆에서 입맛을 다시는 건 봤지만요!"
두 사람 모두 의심스럽다. 정 주임의 '수집벽'과 한 사원의 '억눌린 식욕'. 이 대리가 잔을 내려놓은 뒤 내가 돌아오기까지의 그 짧은 3분. 그 3분 사이에 누군가 최종적으로 잔을 비우고 설거지 수준으로 입을 닦아냈다는 뜻이다. 그때였다. 내 칸막이 너머, 공용 탕비실 입구 쪽에서 아주 작게, 정말 미세하게 "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아주 고소하고 달콤하며, 약간의 산미가 섞인... 게이샤 라떼의 잔향을 머금은 트림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정 주임과 한 사원도 동시에 그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들었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의 발원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93도의 집착은 이제 범인의 멱살을 잡기 일보 직전이었다. 과연 그 3분 사이에 내 커피를 증발시킨 '최종 포식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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