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용의자 헬스 보이 최 사원과 미식가 이 대리
박 과장의 자백으로 수사망은 급격히 좁혀졌다. 박 과장은 공범 혹은 단순 가담자였다. 설탕을 부어 ‘신의 얼굴’에 낙서를 한 신성 모독자이긴 했으나, 그 귀한 액체를 최종적으로 목구멍 너머로 증발시킨 ‘종결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내 시선은 이제 사무실 구석, 묵직한 아령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최 사원의 자리로 향했다.
최 사원은 우리 팀의 막내이자, 근육에 살고 근육에 죽는 ‘헬스 광신도’다. 그는 점심시간에도 닭가슴살 쉐이크를 마시고, 회식 자리에서도 상추만 뜯어 먹는 지독한 놈이다. 그런 그에게 블랙커피란 무엇인가? 맛을 음미하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중추신경을 자극해 데드리프트 중량을 5kg 더 들게 해주는 ‘천연 부스터’일 뿐이다. 나는 그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는 헤드셋을 낀 채 이두박근 컬(Curl)에 집중하고 있었다.
"최 사원, 운동 중 미안한데 잠깐 헤드셋 좀 벗어보지?"
최 사원이 깜짝 놀라며 헤드셋을 내렸다. 그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심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마치 에너지가 넘쳐서 주체할 수 없는 경주마처럼.
"아, 대리님! 무슨 일이세요? 저 지금 세트 사이 휴식 시간이라..."
"박 과장님이 그러시더군. 자네가 내 커피를 '처리'해주겠다고 가져갔다고."
최 사원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이내 특유의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 그거요! 박 과장님이 커피에 설탕을 들이붓고 계시길래 제가 말렸죠. 근손실 온다고요! 설탕은 근육의 적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과장님 손에서 뺏어오긴 했습니다."
"그래서? 뺏어서 마셨나?"
"아뇨! 전 설탕 들어간 커피는 절대 안 마십니다. 혈당 스파이크가 얼마나 무서운데요! 전 그냥 탕비실 싱크대에 버리려고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최 사원이 말을 흐리며 옆자리 이 대리를 슬쩍 쳐다봤다.
"버리러 가는 길에 이 대리님이 절 잡으시더라고요. '어머, 최 사원! 그 귀한 향기를 어디로 가져가는 거야?' 하시면서요."
수사 방향이 다시 한번 뒤틀렸다. 이번엔 자칭 타칭 ‘커피 공주’ 이 대리다. 그녀는 주말마다 왕복 4시간 거리의 유명 카페를 찾아다니며, 집에 수백만 원짜리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놓은 지독한 장비병 환자다. 내가 게이샤를 가져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김 대리님, 혼자 드시면 체해요~"라며 농담 섞인 협박을 했던 것도 그녀였다. 나는 이 대리의 자리로 향했다. 그녀는 지금 아주 우아하게 스마트폰으로 사진 보정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대리님, 최 사원 손에서 제 커피를 가로채셨다면서요?"
이 대리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화들짝 놀란 척을 했다.
"어머, 김 대리님! 들켰네? 호호. 아니, 그게 아니라... 최 사원이 그 보석 같은 게이샤를 싱크대에 쏟아버리려고 하잖아요! 그건 범죄라고요. 예술 작품을 파괴하는 반달리즘(Vandalism)이나 다름없죠. 그래서 제가 일단 '구조'한 거예요."
"구조해서... 본인의 배 속으로 피신시키셨나요?"
"설마요! 전 남이 타준 커피는 취향에 안 맞으면 안 마시는 거 아시잖아요. 게다가 박 과장님이 설탕을 넣었다면서요? 제 고결한 미각에 설탕 탄 게이샤라니, 모욕이죠."
그녀는 당당했다. 하지만 그녀의 책상 위에는 못 보던 물건이 하나 놓여 있었다. 작고 귀여운 휴대용 '전동 거품기'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우유 팩 하나가 반쯤 비워진 채 놓여 있었다.
"이 대리님, 저 거품기는 뭔가요? 그리고 아까 제 잔 주위에 떨어진 그 찰진 우유 거품... 이 대리님의 솜씨 맞죠?"
이 대리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생글생글 웃으며 자백했다.
"아~ 그거요? 사실 제가 한 모금 마셔봤는데, 박 과장님이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서 도저히 브루잉 커피로는 못 마시겠더라고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차라리 게이샤 라떼를 만들어보자!' 싶어서 거품을 좀 냈죠. 그런데 한 입 딱 마시려는 순간!"
"순간?"
"한 사원이 달려오더라고요. '대리님! 부장님이 부르세요!' 하면서요. 그래서 저도 급하게 잔을 김 대리님 책상에 다시 올려두고 회의실로 뛰어갔죠. 전 딱 한 입, 거품 맛만 봤다니까요?"
이 대리의 말대로라면, 내 커피는 박 과장의 설탕 테러를 거쳐, 최 사원의 납치를 통과해, 이 대리의 라떼 개조 작업까지 거친 셈이다. 하지만 이 대리 역시 '다 마시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잔은 내 책상으로 돌아왔을 때 분명 비어 있었다. 이 대리가 잔을 돌려놓은 뒤, 내가 돌아오기까지의 그 짧은 '3분'. 그 3분 사이에 누군가 최종적으로 잔을 비우고 설거지 수준으로 입을 닦아냈다는 뜻이다.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빈 잔을 응시했다. 설탕 한 알, 우유 거품 한 방울. 이 모든 조각이 맞춰졌지만, 가장 중요한 '액체'의 행방이 묘연하다. 박 과장은 설탕을 넣었고, 최 사원은 배달을 했으며, 이 대리는 거품을 올렸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그 '게이샤-설탕-라떼'라는 기괴한 혼종을 단숨에 들이킨 자는 누구인가? 남은 용의자는 단 둘.
조용히 탕비실 간식을 노리는 정 주임인가, 아니면 다이어트 중이라며 오이를 씹던 한 사원인가? 그때였다. 내 칸막이 너머에서 아주 작게, 정말 미세하게 "꺽-" 하는 트림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아주 고소하고 달콤하며, 약간의 산미가 섞인... 게이샤 라떼의 향기를 머금은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소리가 난 곳은 다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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