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석은 텅 빈 302호 거실 한복판에 우두커니 섰다. 범인은 완벽했다. 그는 디지털 지문을 지우기 위해 어댑터를 챙겼고,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 장갑을 꼈으며, 심지어 식물의 생명력을 연장해 '시간'이라는 증거조차 왜곡했다. 하지만 인석은 믿었다. 모든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고, 그 도구는 주인의 습관을 기억한다. 인석은 범인이 '가져간 것'이 아니라, 철저히 무시하고 '남겨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침대 옆 협탁 위, 먼지가 뽀얗게 앉은 검은색 보조배터리였다.
범인 박 씨의 눈에 그것은 그저 흔하디흔한 전자 소모품에 불과했을 것이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빨리 닳는 은수씨가 늘 끼고 살던 물건. 하지만 인석은 유품을 박스에 담으려다 묘한 무게감을 느꼈다. 일반적인 10,000mAh 용량의 배터리라기엔 지나치게 묵직했고, 전면의 잔량 표시등 옆에는 바늘구멍보다 작은, 정교한 유리알의 반사광이 숨어 있었다.
"이건 단순한 배터리가 아니야."
인석은 떨리는 손으로 배터리의 외장 케이스를 분리했다. 안에는 리튬 이온 셀 대신 소형 메인보드와 128GB의 마이크로 SD 카드가 박혀 있었다. 5년 전 사건 이후, 박 씨의 그림자로부터 단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했던 은수씨가 설치한 '최후의 목격자'였다. 스토킹과 협박에 시달리던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그 순간을 기록할 함정을 일상 속에 숨겨두었던 것이다.
인석은 노트북에 메모리 카드를 연결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마지막 녹화 파일을 클릭하자, 8일 전의 영상이 어두운 화면 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영상 속 은수씨는 침대에 앉아 불안한 듯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그때, 현관문 쪽에서 미세한 금속 마찰음이 들렸다. 인석이 침대 밑에서 발견했던 그 '도어락 바이패스 툴'이 문틈을 파고드는 소리였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유유히 걸어 들어왔다. 화면 가득 잡힌 남자의 얼굴. 5년 전 뉴스 화면에서 보았던 거칠고 불안한 청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단정한 뿔테 안경. 현재는 지역사회의 평범한 이웃이자 성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박 씨'의 현재 모습이었다. 그는 당황하는 은수씨에게 다가가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곤 품 안에서 익숙한 동작으로 작은 주사기를 꺼냈다.
"은수야, 네가 살아있는 한 내 과거는 끝나지 않아. 5년 전엔 네가 나를 살렸지만, 이제는 네 죽음이 나를 완벽하게 만들 거야."
영상에는 그가 그녀의 팔에 약물을 주입하고, 숨이 멎어가는 그녀를 소파에 정갈하게 눕히는 전 과정이 담겨 있었다. 박씨는 그녀의 심장이 멈춘 뒤에도 한참 동안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마치 연극의 무대 감독처럼 집안의 습도를 조절하고 약통을 닫는 '편집' 작업을 시작했다. 범인은 5년 전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수법을 반복했다. 시신이 부패해 약물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오만함까지도 똑같았다. 그는 자신이 은수씨보다 우월하다고 믿었지만, 은수씨가 남긴 '일상의 기록'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인석은 영상을 끄고 깊은 숨을 내뱉었다. 화면 속 박씨의 눈빛은 살인자의 광기보다, 거슬리는 얼룩을 지우려는 결벽증 환자의 무심함에 가까웠다.
"당신은 완벽하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 유품은 당신이 지울 수 있는 쓰레기가 아니야."
인석은 증거가 담긴 메모리 카드를 움켜쥐었다. 이제 사냥터는 바뀌었다. 범인은 자신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고 있겠지만, 이제부터는 인석이 설계한 '마지막 정리'의 무대로 그를 불러낼 차례였다. 인석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유품정리사가 범죄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선물, '진실의 공개'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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