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희주라는 거대한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적막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 적막은 평화가 아니라, 무너진 자들의 신음이 잦아든 뒤의 서늘한 냉기였다. 마카오의 금고 사건 이후, 강 형사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경찰직에서 파면되었고, 살인 용의자(서희주)를 사적으로 추적하며 국제적인 소란을 일으켰다는 명목으로 수배 명단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강 형사는 동남아시아의 어느 이름 모를 항구 도시, 낡은 수리점의 구석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방 벽에는 여전히 서희주의 예전 사진들과 그녀가 변신했던 수많은 가짜 신분증 사본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는 이제 법을 수호하는 형사가 아니었다. 그는 '희주라는 괴물'을 가둔 감옥의 간수가 되기로 했다. 그는 희주가 가로챘던 비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24시간 돌리며, 세상 어디선가 '서희주'스러운 소비 패턴이나 기만적인 범죄가 발생하는지 감시한다.
"그녀는 죽지 않았어. 단지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지. 내가 눈을 감는 순간, 그 여자는 다시 독니를 드러낼 거야."
강 형사의 오른쪽 검지는 매일 밤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환상통에 시달린다. 그는 희주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녀가 다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망치지 못하도록 어둠 속에서 그녀를 '영원히 사냥하는 꿈'을 꾸며 늙어가고 있는것이다. 마카오의 바다에서 발견된 구두는 역시 그녀의 트릭이었다. 하지만 강 형사의 덫은 치명적이었다. 그녀의 모든 자산은 동결되었고, 그녀가 협박하던 권력자들은 그녀를 죽이기 위해 킬러들을 풀어놓았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화려한 '세라'도, 강력한 '마담 린'도 아니다. 그녀는 동남아시아의 어느 빈민가, 이름도 없는 무허가 성형외과 뒤편에 숨어 살고 있을것이다. 강 형사가 뿌린 정체 때문에 그녀는 더 이상 완벽한 미모를 유지할 수 없었다. 쫓기는 와중에 급하게 한 야매 성형 수술이 부작용을 일으켜, 그녀의 얼굴은 기괴하게 뒤틀려버렸다. 그녀는 매일 밤 거울을 깨뜨린다. 예전처럼 남자를 유혹할 수도, 누군가를 조롱할 수도 없는 무너진 얼굴. 그것이 그녀에게 내려진 가장 잔혹한 형벌이었다. 그녀는 살아있지만, 자신의 미모라는 감옥에 갇혀 죽어가는 것보다 못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3년 뒤, 방콕의 혼잡한 야시장. 허름한 후드를 깊게 눌러쓴 한 여자가 구걸하듯 음식을 사고 돌아서는 순간, 군중 속에서 날카로운 시선 하나가 그녀의 뒷모습에 꽂힌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멈춰 섰고, 후드 너머로 살짝 보이는 뒤틀린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멀리서 검은 코트를 입은 사내가 천천히 걸어온다. 강 형사였다. 두 사람은 수천 명의 인파 속에서도 서로를 단번에 알아봤다. 증오보다 깊은 연민, 혹은 지독한 동질감. 강 형사는 총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비참한 몰골을 확인하고는 차갑게 한 번 웃어준 뒤, 다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죽이는 것보다 더한 고통은,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추한 존재'로 영원히 살아남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연남공원의 화재 사건은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지금도 어두운 밤, 누군가 과도한 욕망을 품거나 타인의 고통을 즐기려 할 때, 도시의 구석진 곳에선 여전히 타지 않은 재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나온다. 그것은 서희주가 남긴 경고일까, 아니면 강 형사가 여전히 그녀를 쫓고 있다는 신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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