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훈의 관점, 깨진 알고리즘의 파편
내 세상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감정조차도 적절한 입출력 값이 있다면 통제 가능한 데이터라고 믿었다. 현서와 민우, 그리고 나. 우리 셋의 동거는 완벽한 서버 구축과 같았다. 민우는 감성적인 인터페이스를 담당했고, 나는 견고한 시스템 운영을 맡았으며, 현서는 우리라는 프로그램의 핵심 엔진이었다.
그날 아침, 현서가 외출 준비를 할 때 나는 평소처럼 코드를 수정하고 있었다. 현서가 성준을 만나러 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우리 사이의 프로토콜은 '투명성'이었으니까. 하지만 현서의 운동화 끈이 풀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내 안의 오류 탐지기가 미세하게 작동했다.
"현서야, 끈 풀렸어. 넘어지면 어쩌려고."
현서는 웃으며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지훈아, 나 오늘 성준 씨랑 이야기 좀 길게 하고 올 것 같아. 민우한테는...
내가 직접 말할게." 그게 마지막이었다.
현서가 나간 뒤, 집안의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민우는 거실에서 캔버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붓질은 평소보다 거칠었고, 물감 냄새가 유독 비릿하게 코를 찔렀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커서만 깜빡일 뿐 한 줄의 코드도 입력하지 못했다.
오후 4시. 현서의 위치 추적 데이터가 멈췄다. 성준과 자주 가던 그 모텔이었다.
오후 6시. 현서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의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후 8시. 민우가 외출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이 풀려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민우의 예술적 광기가 '소유'라는 독점적 감정과 결합했을 때 어떤 치명적인 버그를 일으키는지. 나는 그를 막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 역시 이 불안정한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의 변수를 제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재구성된 진실
경찰서 취조실에서 강 형사를 마주했을 때, 나는 내 머릿속의 로그 파일을 편집했다.
"저는 시스템을 믿습니다. 현서는 규칙 안에서 자유로웠죠."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생략했을 뿐이다. 민우가 나일론 사를 챙겨 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현서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동시에 기묘한 해방감도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성준이라는 외부 침입자 때문에 보안 설정(Security Setting)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민우는 곧 구속될 것이고, 현서는 세상에 없으니, 우리 셋의 완벽했던 삼각형은 이제 영원히 내 기억 속에만 고정된 '읽기 전용' 파일이 된 것이다.
텅 빈 거실에서 민우의 자백 소식을 전해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서의 향수 냄새가 아직 거실에 남아 있었다.
민우의 이젤 위에는 완성되지 못한 현서의 초상화가 놓여 있었다.
나는 현서의 노트북을 열어 그녀의 흔적을 지웠다. 성준과 주고받았던 다정한 메일들, 우리 셋의 사진들. 그녀가 꿈꿨던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일기장까지. 내 손가락끝에서 데이터들이 0과 1의 무덤으로 사라졌다.
"현서야, 넌 우리 셋의 것이었어야만 했어. 독점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죽음이 공평해."
나는 마지막 엔터키를 눌렀다. 이제 이 집엔 나만이 남았다. 완벽하게 통제된, 그러나 아무런 엔진도 돌아가지 않는
정적만이 흐르는 서버실 같은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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