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외곽의 한적한 모텔, 302호의 공기는 서늘했다. 침대 위에는 현서가 마치 잠든 듯 전라의 상태로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피부는 이미 온기를 잃은 상아색이었고, 목에는 가느다란, 그러나 선명한 보랏빛 울혈이 남겨져 있었다.
현서는 폴리아모리(비독점 다자연애)였다. 그녀는 세 명의 남자를 사랑했고, 그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수용했다. 누군가에게는 파격이었겠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만의 ‘정상’이었다.
사건을 맡은 강 형사는 현서의 주변을 에워싼 세 남자를 소환했다.
세 명의 용의자
민우 (32세, 동거인): 부드러운 인상의 화가. 현서와 가장 오래된 연인으로, 또 다른 연인 지훈과 함께 셋이서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지훈 (29세, 동거인): 냉철한 성격의 IT 개발자. 민우와 현서의 관계를 존중하며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공동체의 기둥이다.
성준 (35세, 주말 연인): 대기업 과장. 평일에는 가정이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나, 주말만큼은 현서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열정적인 연인이었다.
강 형사는 취조실에서 성준을 먼저 심문했다. 현서가 발견된 곳은 성준과 자주 찾던 모텔이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제가 갈 차례가 아니었습니다." 성준이 마른세수를 하며 말했다. "아내에겐 출장이라고 속였지만, 사실 현서가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갔던 것뿐이에요. 하지만 제가 도착했을 때 현서는 이미... 차가웠습니다."
다음은 민우였다. 그의 손에는 물감 얼룩이 묻어 있었다.
"현서는 우리 모두의 빛이었어요. 지훈이와 저, 그리고 현서. 우리는 완벽한 삼각형이었죠. 하지만 최근에 현서가 성준 씨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솔직히... 조금은 무서웠습니다. 그 삼각형이 무너질까 봐요."
마지막으로 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저는 감정보다 시스템을 믿습니다. 우리 셋의 동거 규칙은 엄격했고, 현서는 그 규칙 안에서 자유로웠죠. 하지만 성준이라는 변수가 들어오면서 데이터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서는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그를 그리워하기 시작했거든요."
강 형사는 현서의 목에 남은 울혈의 패턴에 주목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손자국이 아니었다. 아주 가늘고 질긴 선, 그리고 매듭의 흔적.
범인은 민우였다.
민우의 캔버스 뒤편에서 발견된 '나일론 사'가 결정적 증거였다. 민우는 현서가 성준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셋만의 생활로 완벽히 돌아오길 바랐다. 하지만 사건 당일, 현서는 모텔에서 민우에게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민우야, 나 이제 이 생활을 끝내고 싶어. 성준 씨랑만 시작해보고 싶어."
민우에게 그 선언은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지훈과의 우정, 현서와의 사랑, 그 정교하게 쌓아 올린 공유의 성이 '독점'이라는 평범하고도 잔인한 욕망 앞에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네가 다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 멈춰 있길 바랐어."
민우는 현서가 가장 좋아하는 향수를 뿌려주고, 그녀의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낸 뒤 모텔을 나섰다. 그에게 그것은 살인이 아니라, 변치 않는 박제를 만드는 예술적 행위였다.
비독점 다자간의 사랑이라는 복잡한 그물망 속에서도, 결국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소유욕'이었다. 현서는 자유를 꿈꿨지만, 그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공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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