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가파른 언덕 끝자락, 간판도 없는 작은 식당 하나가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지우개 식당’이라 불렀다. 

메뉴는 단 하나, 손님이 잊고 싶은 기억의 맛을 요리로 재현해내는 것이었다.

주인장 ‘진우’는 무심한 표정으로 칼질을 멈추고 문을 열고 들어온 한 여자를 응시했다. 여자의 이름은 서윤. 

그녀는 빗물에 젖은 코트를 벗으며 자리에 앉았다. “무엇을 지우러 오셨습니까?”

진우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서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가방에서 낡은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벚꽃 아래 활짝 웃고 있는 두 남녀가 있었다.

“이 사람과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지워주세요. 그날 먹었던 토마토 스튜 맛이 가슴에 걸려 내려가질 않아요.”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방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냄비에 잘 익은 토마토를 넣고 으깨며, 

그는 서윤이 건넨 사진 속 감정들을 냄새로 맡았다. 설렘, 배신, 그리고 지독한 미련. 사라지는 맛,  남겨지는 마음

한 시간 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토마토 스튜 한 그릇이 서윤 앞에 놓였다. 서윤은 숟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먹었다.

첫 맛은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은 그와 사랑에 빠졌던 첫 순간의 기억이었다.

중간 맛은 혀끝을 톡 쏘는 매콤함은 치열하게 싸웠던 날들의 열기였다.

끝 맛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씁쓸함은 이별의 순간, 그가 남긴 차가운 뒷모습이었다.

서윤은 마지막 국물까지 깨끗이 비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가장 지우고 싶었던 기억인데, 식사를 마칠수록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이제 기억이 안 날 거예요. 그 식탁의 냄새도, 그 사람의 목소리도.”

진우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하지만 서윤은 멍하니 빈 그릇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니요, 사장님. 맛은 기억나지 않는데... 제가 그 사람을 참 많이 사랑했다는 사실만큼은 지워지지 않네요. 

그게 참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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